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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인 밥벌이에 대하여




2002년 봄.

오랫동안 계획했던 세계 여행을 가느냐 스쿠버다이빙 강사 교육을 받느냐의 기로에 서서 돈 때문에 고민했다. 마음은 강사 쪽으로 기울었고 그해 여름 푸켓으로 떠났다. 강사가 되어 다이빙도 하면서 돈을 다시 벌어 여행을 가겠다는 심산이었다. 나는 계획을 세우고 신은 그 계획을 바꾼다고 했던가. 현실은 냉혹했다. 돈을 벌기는커녕 그나마 있던 것마저 모두 탕진했다. 이듬해 봄, 실크로드를 지나 유럽으로 건너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돌아오고자 했던 여정은 속절없어졌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고민을 덜어주는 데는 그 몫을 톡톡히 한다. 시장경제 체제에서 돈을 버는 방식은 다양하다. 그중에 단연 최고의 방법은 최단의 시간에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이리라. 시쳇말로 대박을 터트리거나, 클릭 한 번으로 오백만 개의 상품을 팔거나, 자본을 지렛대 삼아 부풀리는 것이다. 이 외의 대부분의 벌이 방식은 시간과 노동력을 파는 것이다. 남의 일을 해 주고 보수를 받든 내 일을 직접 하든 마찬가지다. 스쿠버다이빙을 제공하는 거의 모든 상품도 이에 속한다. 가장 일반적인 상품인 강습이나 여행을 예로 보자면 뚜렷해진다. 진행을 위해서는 일련의 시간을 요하고 한 번에 참여 가능한 인원도 지극히 제한적이다. 시간을 아무리 줄이고 인원을 아무리 늘린다 해도 결국 한계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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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에서 스쿠버 강사로 활동을 시작할 무렵인 이천 년대 초반, 한국인 강사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다이빙에 관심을 가졌고 강사도 따라 많아져갔다. 그동안의 강습 비용 추이를 보면 수요와 공급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얼추 알 수 있다. 내가 처음 다이빙을 시작했던 태국 피피섬의 강습 비용 변화를 살펴봤다. 2001년 5월의 비용과 딱 20년이 지난 현시점인 2021년 5월의 비용은 다이브 숍 평균 40% 상승했음을 확인했다. 그간의 태국 연평균 물가 상승률인 2%를 감안한다면 가격은 변화가 없는 셈이다. 하지만 예전엔 없던 국립공원 입장료와 교재 구매 비용을 제하면 강습비는 오히려 하락했다고 봐야 한다. 다이빙을 배우려는 사람도 늘었지만 강사는 더 늘어난 모양이다.​

수요보다 공급이 많으면 가격은 바닥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공급자의 마지노선을 지키려면 시간을 줄이고 수요를 늘려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교육단체는 더 까다롭고 길어진 강습 커리큘럼을 제공한다. 강사의 책임보험 가입은 지역의 의무 외에도 강력히 권장된다. 다이버가 늘어감에 따라 강제하는 지역의 규칙도 점점 많아져 간다. 강사의 책임과 의무는 막중하고 권리는 바닥에서 스스로 찾아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박 터지게 경쟁하다 결국 소수만이 살아남는다. 나머지는 모두 추억과 명예직을 안고 퇴장한다.​

여기 세 부류의 강사가 있다.

- 자기 비용을 들여서 다이빙하는 강사

- 자기 비용을 안 들이면서 다이빙하는 강사

- 자기 비용도 안 들이고 벌면서 다이빙하는 강사


자아실현이나 재능 기부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이상, 처음에는 모두 세 번째 부류의 강사가 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실상은 이러하다. 어제는 학생이었고 오늘은 강사가 되었다. 어제는 오백 원 내기를 원했고 오늘은 천 원 받기를 원한다. 내가 어제 오백 원 내기를 원했듯 그들도 똑같이 오백 원 내기를 원한다. 시장에는 오백 원짜리 상품이 난무한 가운데 그 이상의 것을 선택하는 것은 꺼려지고, 천 원 밑으로의 제공은 업으로서 영위해 나가는 것을 위태롭게 한다. 입장의 차이에 따른 괴리는 극명하다. 첫 번째 단계에서 두 번째 단계로, 다시 두 번째에서 세 번째로 오르는 길은 요원해 보인다.​



여기 또 다른 세 부류가 있다.

- 다이빙을 제공받길 원하는 학생

- 다이빙을 제공하길 원하는 강사

- 이 두 고객에게 자격증을 제공하길 원하는 교육단체


단체는 강사가 학생에게 강습비로 오백 원을 받든 천 원을 받든 상관하지 않는다. 그들이 판매하는 교재나 자격증 비용은 강사가 받는 강습비와는 무관하다. 그저 강사를 더 많이 배출하고 더 경쟁시키고 더 많은 판매를 촉구할 뿐이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회사인 만큼 의당 그들의 존재에 맞게 할 일을 하는 것이다. 강사는 결국 치열한 가격 경쟁에 돌입하여 제 살 깎아 먹기를 하거나, 몸값을 높이고 더 많은 상품을 제공하기 위해 단체에 또 지불해야 한다.​


2013년 봄.

코스 디렉터 트레이닝 코스(CDTC​)는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에서 개최되었다. 첫날 모두를 소개하는 시간, PADI의 핵심 간부이자 CDTC 진행자 중에 한 명은 본인을 소개하던 중에 이런 말을 했다. 그의 어린 아들이 "아빠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에요?"라는 물음에, "아빠는 다이빙을 가르치는 사람을 가르치는 사람을 가르치는 사람이란다"



많은 경험과 공부와 비용을 들여 단체의 최상위 코스에 임하고 있는 후보생들. 그는 그들의 긴장을 풀어주고자 우스갯소리로 한 말일 것이다. 허나 나는 마냥 웃어넘길 수만은 없었다. 강사는 학생을 가르치고 그 학생이 강사가 되고,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강사는 다시 강사 트레이너가 되고, 다시 강사 트레이너 트레이너가 되고...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모습이 연상된 것은 단지 기분 탓이었을까. 진행자들은 코스 진행 내내 상위 1%라는 말로 후보생들의 의기를 한껏 북돋았다.​


2021년 봄.

J 강사는 말한다. 낭만적인 밥벌이를 위하여~

여기엔 넌지시 만족의 의미를 담고는 있지만 실상은 예의 세 번째 단계를 갈구하고 있다. 지난 이십여 년간 과연 이것이 가능하긴 한 걸까 하고 고심해 왔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꾸역꾸역 숙제를 풀어 제출했다. 나는 매번 이 무거운 숙제의 답을 오백 원과 천 원의 괴리를 넘어선 그 어딘가에서 찾아 헤맸다. 돌아보면 형편없는 답을 제출하기도 했고 끝내 풀지 못했던 적도 있다. 이렇다 할 정답을 모르니 누군가에게 알려줄 도리도 없다. 덫에 걸린 기분이지만 이것은 너무도 매력적이어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피할 수 없다면 선택해야 한다. 끊임없이 숙제를 풀어 나가거나 문제가 너무 어려울 때는 낭만과 밥벌이 중 하나쯤은 내려놓거나.


이 길 위에 서서 고심하고 있을 모두에게 부디 스스로 만족할만한 답을 찾기를 바란다.​















John. Young Joon Kim

PADI Course Director #471381

Zero Gravity - Scuba Diving Academy & 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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