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과 달빛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밤이었다. 야간 다이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다. 해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큰 배에서 조각 배로 옮겨탄다. 배 가운데에는 장비 가방을 가득 싣고 배 가장자리에는 다이버들이 빙 둘러앉는다. 해변까지는 이백여 미터 남짓한 거리. 사방은 어둡지만 온 해안가를 차지하고 있는 주점들의 불야성으로 방향을 파악한다. 롱테일이라고 부르는 보트는 엔진과 연결된 긴 꼬리 끝에 작은 프로펠러를 달고 있다. 종종 말썽을 부리던 녀석이 오늘은 끝내 시동 걸릴 생각을 않는다. 때마침 썰물이다. 정박해 놓은 큰 배로부터는 이미 한참을 떠났고 해변가의 불빛도 점점 멀어지는 듯하다. 나는 보트에 앉아있는 스탭들에게 조용히 말했다. "자, 가방에서 오리발 꺼내세요"
비슷한 상황을 우리 바다에서도 겪은 적이 있다. 야간 다이빙은 아니었지만 작은 배를 타고 제법 멀리 나갔다. 다이빙 포인트에 거의 다다랐을 즈음 엔진이 멈췄고 망망대해에서 표류했다. 보트의 텐더는 전화기를 깜빡하고 놓고 왔다며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입수를 위해 장비를 모두 걸치고 있던 팀원들에게 나는 조용히 벗으라고 말했다. 엔진을 한참 만지작거려 겨우 돌아가게는 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선착장까지 돌아오기까지는 한참이 걸렸다. 고성능의 엔진 하나는 그보다 성능이 낮은 두 개의 엔진을 장착한 것만 못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었다.
보트에는 여러 팀들이 타고 있다. 다이빙 포인트를 정하는 대에서 팀 간에 의견이 갈린다. 대안으로 제법 거리가 있는 두 포인트 중 한 곳에 몇 팀을 드롭하기로 한다. 배는 그 팀들을 떨구고 제2의 포인트로 떠난다. 이곳에서 다이빙을 시작한 다이버들은 두 번째 포인트로 스스로 와야 한다. 다이빙 중에 문제가 생겨 수면 위로 올라와도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배는 없다. 수십 개의 다이브 숍 중에서 여러 곳이 매번 이런 방식의 다이빙을 진행했다. 그리고 매년 최소 한 번은 사고 소식이 나돌았다.
이런 상황을 우리 바다에서 직접 겪은 적이 있다. 배에는 우리 팀과 다른 한 팀이 타고 있었다. 드라이슈트를 바다에서 처음 사용하는 다이버들이 있어 입수 후 적정 웨이트를 점검하기로 했다. 우리 팀 모두 입수하여 수면에서 웨이트를 확인하고 있는데 보트가 엔진을 돌린다. 우리는 보이지 않을 만큼 멀어져 가는 배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다행으로 웨이트가 더 필요한 상황은 생기지 않았다. 우리는 입수를 했고 계획했던 다이빙 시간보다 십여 분을 더 진행했다. 나는 팀원들의 잔압계를 더 자주 확인해야만 했다. 배 엔진 소리가 들려오지 않아 심란했다. 다이빙을 마치고 올라왔을 때 망할 보트는 근처에 와 있었다.
보트를 운행하는 텐더와 다이빙을 인솔하는 리더는 버디 관계다. 텐더와 리더는 사전에 다이빙 계획에 대해 논의하고 약속대로 진행한다. 텐더는 파고와 조류 등의 바다 상황을 살피고 다이버의 버블을 예의주시한다. 우리를 바다 한복판에 남겨둔 채 떠나버렸던 그 텐더는 리더에게 귀띔도 주지 않은 채 일방적인 진행을 했다. 다행히 별일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매우 불안정한 다이빙을 해야만 했다. 다이빙을 마친 후 그 텐더와 조용한 대화를 나눴다. 그 후로 그곳을 방문한 적은 없다.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대개 여름과 가을 두 철 장사다. 주말에 날씨라도 몇 번 안 좋을라치면 타산이 맞지 않는다. 한 번의 보팅에 최대한 많은 다이버를 태우고 최대한 많은 횟수를 쳐내야 한다. 좌우로 리프트를 장착한 수용인원 큰 배를 선호하고, 가까우면서도 깊은 수심의 포인트를 추천하는 이유일 것이다. 간혹 사고라도 나면 장사에 제동이 걸린다. 대서특필된 게 아니라면 두루뭉술 영업을 이어갈 수 있다. 만약 심각한 상황이더라도 간판을 바꿔 달면 그만이다. 다만 지난해에 했던 것보다 더 달려야 잃은 것을 만회할 수 있다. 관점이 다소 비약적일 수는 있으나, 다이빙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부분의 다이브 리조트들이 직면하고 있는 냉엄한 현실이다.
가고자 하는 지역의 다이브 리조트를 선택할 때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선호하는 점들이 있다. 원하는 포인트를 갈 수 있는지, 보트에 리프트 시설은 있는지, 숙소나 샤워실, 휴식 공간과 같은 편의 시설은 쾌적하게 잘 갖춰져 있는지 등이다. 물론 같은 값이라면 따져봐야 할 항목들이다. 팀을 인솔하는 리더라면 이런 항목들 못지않게 살펴봐야 할 것들이 있다. 다이빙 진행 스케줄과 운영 방식은 어떤지, 보트의 엔진 운용 시스템은 어떤지, 텐더의 역량과 진행 방식은 어떤지, 응급처치 시설은 제대로 갖추고 있는지, 무엇보다도 운영자의 마음가짐은 어떤지를 살펴야 한다.
기실 이러한 항목들을 방문 전에 미리 알기는 어렵다. 첫 방문 후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이후의 방문은 재고될 수밖에 없다. 설령 많은 부분을 충족한다 하더라도 다이버의 안전보다 벌이를 앞 새운 모습이 엿보인다면, 그들에게 나와 팀을 맡길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삼가 바라옵건대, 다이빙 갈 때는 좋은 날씨를 베푸시어 모든 다이버들이 안전하고 만족한 다이빙을 할 수 있도록 하옵시고, 리조트 운영진에게도 충분한 재화를 베푸시어 올바른 운영 방식을 선택하게 해 주시기를 용왕님께 비나이다.
John. Young Joon Kim
PADI Course Director #471381
Zero Gravity - Scuba Diving Academy & 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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