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북을 쓰다

최종 수정일: 2월 3일




로그북 logbook - 매일의 항정(航程) 및 항해(航海)에 관한 일체의 것을 적은 기록. 항해일지. ​​



이십여 년 전 태국 피피섬에서 만났던 일본인 강사 료코. 그녀의 로그북은 손바닥만 한 작은 수첩이었다. 거기엔 다이브 넘버와 날짜, 장소 이 세 가지 정보가 한 줄씩 적혀 있었다. 당시 다이브 마스터 과정 중에 있던 나는 다이빙 횟수가 백 회도 채 되지 않았었다. 육백이 넘는 숫자가 적혀있던 그녀의 간단명료한 로그북이 지금도 생각이 나는 것을 보면, 당시 내게 얼마큼 강한 인상으로 비쳤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이듬해 푸껫에서 강사로 활동하며 홈메이트로 함께 지냈던 일본인 강사 타쮸. 그가 가지고 있던 수많은 생물 도감도 부러웠지만 그의 묵직한 로그북에는 천이백이 넘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동경의 눈빛으로 바라보던 나에게 그는 자신의 로그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한 동료 다이버에 대해 얘기했다.



그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와 함께 다이브 숍에서 일하던 태국인 다이브 마스터였다. 그는 유럽에서 온 다이버들을 인솔하여 매일같이 다이빙을 했다. 그의 로그북에는 사천이 넘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그 또한 자신의 로그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다른 동료에 대해 얘기했다. 그의 이름은 숍에서 함께 일하던 독일인 강사 안드레아스. 그는 여름철에는 강습과 데이 트립 가이드로, 겨울철에는 시밀란 리브어보드를 십여 년이 넘게 타고 있었다. 내가 확인한 그의 로그북에는 칠천이 넘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그것이 내가 지금까지 본 중에 듣거나 유추한 것이 아닌 기록된 가장 많은 횟수의 로그다.





다이빙을 처음 시작했던 2001년부터 지금까지 로그북을 써오고 있다. 다이빙을 마치면 장비를 세척하듯 로그북을 쓰는 것 또한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강사가 된 이후에도 강습생들과 함께 로그북을 썼다. PADI의 강습 기준에는 위험관리를 위해 강사의 로그북에 학생 다이버의 서명을 받을 것을 권장하는 내용이 있다. 하지만 이런 이유 때문에 로그북을 써온 것은 아니다. 이따금 나를 통해 다이빙을 배웠던 분들에게서 연락을 받을 때가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분들을 진행해 오다 보니 기억이 선뜻 나지 않을 때가 있다. 이때 로그북의 기록은 그 당시의 기억들을 새록새록 떠오르게 한다. 기록을 남겨두는 것은 함께 했던 분들과 추억을 기억하기 위한 탁월한 방법이다. ​



나는 로그북 용지로 얇으면서도 모눈종이 형태로 된 것을 선호한다. 종이가 두꺼우면 부피가 많아지기 때문이고, 모눈종이는 수중 지형을 그리고 방위를 표기하는 데 유용하다. 다이빙을 다녀오면 매번 수중의 지형과 다녔던 동선을 로그북에 남겼다. 새로운 장소는 물론이고 익숙한 곳이다 하더라도 더 세세한 정보를 업데이트했다. 같은 포인트를 방문해도 시야나 여타 환경에 따라 달리 보일 때가 있다. 수중 지형과 이동 경로를 기록하는 것은 포인트를 보다 확실하게 익히기 위한 일종의 공부인 셈이다. 이처럼 수중 지도 그리는 것을 습관화하면 항법 능력은 물론, 공간 지각 능력이 향상된다고 믿는다.





로그북에 다이빙 환경에 대한 정보를 남겨두면 여러모로 활용도가 높다. 내가 로그북에 남기는 정보 중 환경에 관한 것은 기본적으로 수온, 시야, 조류, 파고 이 네 가지다. 태국에서 십 년 가까이 다이빙하며 기록했던 내용들을 분석해 보면 환경에 따른 믿을만한 통계를 만들 수 있을 정도다. 예로, 타이 만(Thai 灣) 바다 환경의 연도별이나 월별 변화 추이라든지, 고래상어의 시기별 출몰 빈도와 이동 경로, 수온에 따른 산호의 생성 과정이나 생물의 이동과 같은 생태계의 변화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계절이 있는 우리 바다 또한 지역과 시기별 환경에 대한 기록은 후에 진행할 다이빙을 위해서도 매우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수중생물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다이빙을 지속하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다. 다이빙하다 진귀한 생명체를 만날라치면 사진도 찍고 도감도 찾아보고 기록을 남겨놓는다. 아는 만큼 시야는 확장되고 다이빙에 대한 흥미도 촉진된다. 이처럼 수중생물을 알아가는 것은 다이빙의 재미를 더하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생태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져 물속 세상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강사가 로그북 쓰는 것을 처음 본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컴퓨터에 다 저장되어 있는데 굳이 다시 적느냐고 묻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컴퓨터가 제공하는 정보를 옮겨 적는 것이 아니다. 몇 시에 들어가서 몇 시에 나왔는지, ​수심은 얼마고 얼마나 다이빙했는지 등은 하등 중요하지 않다. 내가 주안점을 두는 내용은 누구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를 '생각한' 기록이다. ​



로그북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롯이 나만의 기록장이다. 강제하지도 않으며 딱히 정해놓은 형식이 있는 것도 아니다. 로그를 적는 다이버와 그렇지 않은 다이버의 차이를 나는 여러 방면에서 목도했다. 무언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숙고와 실천이 병행돼야 하듯, 로그북 또한 실행했던 다이빙을 돌아보게 만든다. 행하고 생각한 것을 기록으로 남겨두는 것은 더 나은 다이빙을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이다.

















John. Young Joon Kim

PADI Course Director #471381

Zero Gravity - Scuba Diving Academy & 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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