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이야기

7월 17일 업데이트됨




섬이 있었다.

태초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상상해 보자면 이런 곳이 아니었을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 '더 비치'의 배경이 된 곳이다. 몇 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지만 사람이 사는 지역은 그리 넓지 않다. 네 발 달린 차는 아직 없다. 차가 필요할 정도로 멀지 않고 차가 다닐 정도로 길 폭도 넓지 않다. 골목길 바닥은 고운 모래로 덮여 있다. 맨발이 좋아 신발을 신을 일이 없다. 하루에 다섯 번 이슬람의 예배 시간을 알리는 아잔이 울려 퍼진다. 처음엔 낯설었지만 점점 마음이 경건해진다. 대신 식당에서 돼지 들어간 음식은 찾기 어렵다.



집에서 나와 5분여를 걸으면 다이브 숍이다. 수레에 장비를 싣고 다시 5분여를 걸으면 부두에 닿는다. 해변에 가까워질수록 섬 특유의 냄새가 진해진다. 하얀색의 엑스칼리버호(號)가 늠름한 자태를 뽐내며 출항을 기다리고 있다. 다이빙 포인트는 가깝고 다양하며 예쁘다. 적어도 2004년 겨울에 쓰나미가 쓸고 가기 전까지는 그랬다. 섬 뒤로 해가 지면 운치 있는 펍들로 불야성을 이룬다. 그곳엔 훌륭한 음악가들이 많다. 다이브 숍 티셔츠를 입고 가면 술값을 할인받는다. 다이버인 게 뿌듯하다. 2001년의 피피섬이었다.






섬이 있었다.

이 나라에서 가장 큰 섬이었다. 뭍과 연결하는 다리를 놓으면서 더 이상 섬이라 부르지 않는다. 타운으로 나가면 여느 도시와 다름없이 북적거린다. 국제적인 휴양지답게 길고 아름다운 해변을 여러 개 품고 있다. 비치 언저리마다 유명한 호텔들이 즐비하다. 수도 근교에 있는 곳과 쌍벽을 이루는 환락가가 여기 있다. 베트남전 당시 미군 R&R의 소산이 지금까지 이어온다. 관광객이라면 남녀 불문하고 관심 있어 하는 곳이다. 다이빙을 마치는 날 사람들을 이끌고 밤마실을 나온다. 한껏 치장한 형들이 야릇한 미소를 보낸다. 그녀들의 걸걸한 목소리에 다들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다이빙 가는 날은 꼭두새벽에 일어나야 한다. 숍에 나가 전날 챙겨 놓은 장비를 차에 싣고 사람들을 픽업한 후 배가 있는 부두로 간다. 다이빙 포인트들은 섬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하루에 네 번의 다이빙이 있는 날이면 숍에 밤 열시쯤 되어 돌아온다. 스태프는 보트에서 눕거나 잠자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보트 위에서 하루 종일 살다 보니 웬만한 파도에는 멀미가 없다. 파도가 웬만하지 않은 날에는 보트가 뜨지 않는다. 그런 날이면 홈메이트 강사는 서핑보드를 들고 집 근처 비치로 향한다. 집에서 타운에 있는 대형 마트까지는 오토바이로 한 시간 정도 거리다. 우리는 저녁 일곱시 반에 타운으로 출발하곤 한다. 여덟시 반이 되면 마트의 스시 코너에 할인 스티커를 붙이기 시작한다. 2002년의 푸껫이었다.






섬이 있었다.

첫 번째 섬보다는 크고 두 번째 섬보다는 작다. 남북으로 세 개의 마을이 있다. 부두와 세 마을을 잇는 큰 길은 하나뿐이다. 차 한 대 겨우 비켜 다닐 수 있는 비포장도로다. 편의점은 각 마을에 하나씩 있다. 백화점이라고 부르는 규모가 제법 있는 마트도 한 군데 있다. 뭍에서 쾌속선으로 두 시간 떨어져 있는 섬이니 '제법'의 의미를 가늠해야 한다. 공공 전기발전 시설이 없던 터라 저녁이면 집집마다 자가발전기 돌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새벽이면 이웃집에서 키우는 닭 울음소리에 잠을 설친다. 산에 사는 원숭이는 마주칠 때마다 흠칫 놀라 달아난다. 불편은 하지만 감당은 가능하고 딱 필요한 것만 있는 그런 곳이다.



주민들은 순박한 시골 마을 사람들이다. 집안에 모셔둔 부처님 상에 정성을 다한다. 이웃집 사람들은 잔칫날이면 음식을 나눈다. 옆집 할머니는 당신의 손자인 양 대해준다. 식당에 깜빡 지갑을 놓고 가도 선뜻 음식을 내어 준다. 동네 아저씨들은 애완용으로 새를 키운다. 마을 어귀에서 펼쳐지는 새소리 경연은 아직도 어떻게 판가름하는지 모른다. 그들은 그저 큰 욕심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욕심 없기는 물속도 마찬가지다. 시야가 진짜 좋다거나, 수중생물이 정말 많다거나, 매우 화려하다거나, 엄청 웅장하다거나, 무엇 하나 월등한 것이 없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평균으로 보자면 그렇다. 2004년의 따오 섬이었다.





첫 번째 섬은 아기자기하고 두 번째 섬은 활기 있다면 세 번째 섬은 고즈넉하다. 덜 살고 더 살아서 그렇게 느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 섬은 뭔가 모자라고 어설프고 순박했다. 반쯤 빈 잔이다. 마음이 쓰인다. 그래서 그리 오래 살았나 보다. 작년 봄 역병이 돌기 시작한 이래 오늘 결국 정점을 찍었다. 우울한 밤에 저 바보 같은 섬이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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