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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하기




태국 남부 동쪽 해안에 아름다운 섬이 하나 있다. 봄, 가을 결혼 시즌이 오면 한국인 신행객들로 섬은 북적였다. 그곳은 체험다이빙을 진행하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였다. 고운 모래로 펼쳐진 백사장과 에메랄드빛을 발하는 해변과 화려한 열대어들. 인솔해 온 가이드는 그들에게 간식으로 나눠 준 빵을 활용하는 방법을 일러주었다. 다이빙을 할 때 빵으로 물고기를 유인하는 것이다. 빵 맛을 본 물고기들은 다이버들만 보면 이내 몰려들었다. 빵이 없는 이들에게도 빵을 내놓으라며 졸졸 쫓아다녔다. 심지어 깨물기까지 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더 이상 빵을 물속에 들고 가지 않기로 했다. 그 녀석들이 스스로 먹이 구하는 습성을 다시 찾을 수 있어야 할 텐데...



강사 개발 과정을 마치고 시험에 임하는 후보생들과 함께 있다. 시험에서 출제되는 과제는 모두 과정 동안 다뤘던 범주 안에 있고, 시작하는 날 후보생들에게 미리 제공된다. 후보생들은 각자에게 배당된 시험 과제를 스스로 준비해서 발표해야 한다. 모두 모여 과제를 준비하던 중 후보생 중 누군가 질문을 한다. 나는 대답한다. 다른 후보생이 또 질문을 한다. 나는 또 대답한다. 질문이 계속 이어진다. 어느 순간 모두들 코스 디렉터의 입만 바라보고 있다. ​​그들은 생각을 멈췄다. 불경스럽게도 예의 그 섬에 있던 물고기들이 떠오르는 것을 어쩌랴.




질문은 좋은 것이며 필요하다. 그리고 답변은 신중해야 한다. 생각을 멈추느냐, 스스로 생각하느냐는 답변에 달렸다. 질문에 그저 답을 주어버리는 것은 남의 생각과 경험을 전하는 것뿐이다. 무언가를 배우기 위한 질문에 가장 좋은 답변은 질문에 질문하는 것이다. 되묻는 질문에 그들 스스로 생각해서 내놓는 답변은 대개 정답에 가깝다. 혹여 만 점짜리 답은 아닐지라도 낙방할 정도가 아닌 한 나쁘지 않다고 말한다. 기실 강사 시험 평가에서 완벽한 정답은 있을 수 없으며 꼭 그것을 요하는 것도 아니다. 강사 개발 과정의 목적은 강습 기준을 잘 이해하고 올바른 판단을 하는 방법을 배우는 데 있다. 스스로 사고하여 답에 이른 것이야말로 온전한 내 것이 된다.



​머리로 생각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몸으로 행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꼭 잠긴 실린더 밸브를 여는 등의 장비를 다룰 때 종종 쉽게 도움을 청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우스갯소리로 건네는 말, '안되면? 세게 하라'. 장난으로 포장했지만 내심 진심도 섞여 있다. 그리고 많은 경우가 이에 성공한다. 강사의 입장에서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은 그저 해 주는 것이다. 도움을 청하면 주저 없이 도와주고 웃으며 좋은 말이 오가고, 아름답지 아니한가. 이처럼 친절한 강사가 되는 것은 아주 쉽다. 그러나, 무언가 잘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냥 해 줘버린다면 학생은 그것을 제대로 배울 수 있을까? 오해는 말라.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작업까지 무조건 직접 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도움을 청하는 것은 쉽지만 대신 배움을 얻을 기회는 잃게 된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은 잘한다는 것의 반대 개념이기도 하다.




​프로페셔널 다이브마스터 과정 중에 진행하는 인턴십 실질평가 세션에서 자주 토론하는 내용이 있다. 부력 조절이 서툰 학생 다이버를 도와줬을 때 어느 때는 강사의 칭찬을 듣고, 어느 때는 그렇게 하지 말라는 제안을 듣는다. 그것은 무슨 차이일까? 초급 과정에 임하고 있는 다이버라면 의당 부력 조절에 서툴 수밖에 없다. 수영장에서의 연습과 기번의 다이빙을 진행하며 숙달돼 가는 과정인 것이다.



뜬다고 잡아주고 내려간다고 잡아주면 학생 다이버는 스스로 부력을 조절하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한다. 바로 이것이 강사로부터 그렇게 하지 말라는 조언을 들은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만약 뜨는 와중에 배 엔진 소리가 들려온다면? 만약 가라앉는 와중에 아래가 산호 밭이라면? 이런 상황이라면 신속히 다이버를 도와줘야 하고 강사는 이에 칭찬을 했을 것이다. 해 줄 때와 스스로 하게 할 때를 판단하는 것 또한 프로페셔널이 갖춰야 할 능력이다.





​해 주는 것과 알려 주는 것은 구분이 필요하고 상황에 맞게 적절해야 한다. 그리고 이 둘 모두 모자람도 지나침도 없이 적당해야 한다. 버디의 장비 가방을 대신 들어주는 것은 알려 주는 게 아니라 해 주는 것이다. 매섭게 출렁이는 수면에서 배의 사다리를 오르지 못하는 다이버를 도와주는 것 또한 해 주는 것에 가깝다. 그렇다면 장비를 대신 조립해 주는 것은 어떤가? 장비를 입혀주고 오리발까지 신겨주는 것은 어떤가? 평온한 바다에서 보트의 사다리를 오를 때 오리발을 벗겨주는 것은 어떤가? 평생 그 다이버 옆에 붙어서 도와줄 게 아니라면 어떻게 하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일까?​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배움에는 지름길이 없고 누군가 대신해 줄 수도 없다. 알려준 것을 스스로 생각하고 직접 해 봐야만 비로소 온전한 내 것이 된다. 도움을 청할 때도 줄 때도 모두 그 적정선을 유지해야 한다. 그것이 부족해도 과해도 좋은 버디나 탁월한 리더는 될 수 없다. 만약 그 선을 지키지 못한다면 그대의 학생, 혹은 그대의 버디는 요람 속의 다이버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이런 말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이 장비 가방 제가 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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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Young Joon Kim

PADI Course Director #471381

Zero Gravity - Scuba Diving Academy & 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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