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어 이야기
소싯적 다이빙을 함께 했던 동료들과 상어 이빨 목걸이를 사서 걸고 다녔던 적이 있다. 다이빙을 막 시작하던 시절이라 그것을 다이버의 상징쯤으로 여겼던 모양이다. 샥스핀을 찾는 사람들이 있기에 상어를 잡고 기념품을 사는 사람들이 있기에 상어의 이빨을 뽑아 판다는 사실은, 다이빙을 한참 더 한 후에나 알게 되었다. 지금은 온데간데없어진 그 기념품을 당시에도 얼마 걸치지 않은 이유는 사실 따로 있었다. 무디게만 보였던 상어 이빨이 두꺼운 종이를 면도날처럼 예리하게 가르는 것을 본 후, 우리는 자기 전에 침대맡에 목걸이를 벗어두는 습관이 생겼다.
지금까지 인류에게 알려진 상어의 종은 약 440여 종이다. 이 중 우리가 다이빙하며 만날 수 있는 종은 그리 많지 않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대부분의 상어는 온순하며 겁도 많다. 실제로 물속에서 만나 사진을 찍으려 다가가면 여지없이 꽁무니를 빼고 만다. 종종 영화의 소재로 사용되는 몇 우람한 종들은 우리가 다이빙하며 만나려 해도 거의 볼 수 없는 녀석들이다. 가끔 인간을 공격한 상어에 대한 이슈는 시력이 나쁜 상어가 다이버를 물개나 바다거북 등으로 착각한 때문이라고 한다. 상어가 인간을 공격한다기보다는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먹이활동을 하는 것이 그들의 삶인 만큼 그저 제 할 일을 하는 것뿐이다. 만약 운이 아주 좋아 공격성을 띤 특별한 종을 만난다면 스스로 경계하는 것이 상책이겠다. 강력한 턱과 날카로운 이빨을 지닌 그들이 우리를 통통하게 물이 오른 물개로 오인하지 않기를 기도하자.
가오리 이야기
야간 다이빙 강습을 진행하던 옆집 다이브 숍의 강사가 가오리의 독침에 쏘인 사건이 있었다. 맹독성의 독침을 지닌 푸른 반점 가오리는 주로 야행성으로 모래밭에 숨어 있곤 한다. 그 강사는 강습생들을 살피느라 주위를 제대로 살피지 못 한 것이다. 다행히 최악의 상황은 면했지만 그는 그 길로 귀국길에 올라야만 했다. 이름에 스팅(sting)이라는 말이 붙는 가오리는 꼬리 부분에 독침이 있다. 대부분의 해양생물들이 지닌 독은 육상생물의 독보다 월등히 강하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가끔 다이버들에게 가오리의 숨겨진 독침을 보여줄 때가 있다. 녀석에게 손이나 물체를 천천히 들이밀면 꼬리 중간 부분에 숨겨둔 독침을 슬며시 치켜세운다. 만약 녀석의 몸통에 손이 닿기라도 한다면 독심은 쏜살같이 날라와 손등에 박힐 것이다.
감펭 이야기
우리말로 '쭈굴감펭'이라고 불리는 'Scorpion fish' 또한 맹독성의 침을 지닌 무서운 녀석이다. 이 녀석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주위의 색과 구별이 어려울 만큼 교묘하게 형체를 위장하고 있다. 스콜피온 피시보다 더 강한 독침을 지닌 '퉁쏠치'는 영문 이름인 'Stone fish'에서도 엿볼 수 있듯 훨씬 더 은밀하게 위장한다. 이 녀석의 독은 호흡 곤란과 신경 마비를 일으켜 사망에 이르게 할 만큼 강력하다. 이들과 같은 과인 쑤기미(Devil stinger)는 야행성으로서 보통 모래바닥에 숨어 있다가 먹이를 사냥한다. 반면에 위장술 대신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쏠배감펭(Lion fish)은 펼친 지느러미 끝에 독침을 지니고 있다. 암초나 모래 바닥을 무심결에 짚는다거나 예쁘다고 만졌다가는 상상 이상의 고통을 감내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니모와 말미잘 이야기
니모(Anemone fish)와 말미잘(Sea anemone)은 같이 산다. 말미잘은 촉수에 독이 있어서 나풀나풀 펼치고 있다가 지나가는 생물을 잡아먹는다. 말미잘의 끝부분인 촉수를 만지면 흡반처럼 달라붙는다. 경험으로 보건대 손바닥 쪽의 피부는 독성에 그리 영향을 받지는 않는 듯하나, 그 외의 부드러운 피부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피부에 닿으면 발적이 일어나고 가려운 증상은 제법 오랫동안 지속된다. 말미잘과 함께 사는 니모는 그들의 독에 내성이 있는 듯하다. 해양생물학자들은 연구 끝에 그들이 공생관계임을 밝혀냈다. 말미잘은 니모를 포식자로부터 보호해 주고 니모는 말미잘에게 먹이를 유인해 주거나 해충을 제거해 주는 역할을 한다. 니모는 작고 귀엽게만 보이지만 영역 보호 본능이 강하고 꽤 앙칼지다. 손가락을 들이밀면 순간 달려와 날카로운 이빨로 두 줄의 가늘고 긴 상처를 내고 달아날 것이다.
바다 뱀 이야기
바다 뱀은 코브라보다 강력한 맹독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퇴화되어 육상의 뱀보다 주둥이를 크게 벌리지는 못한다. 시력 또한 퇴행되어 앞을 거의 보지 못하고 오직 후각으로 먹이사냥을 한다. 바다뱀은 폐를 가진 파충류이므로 가끔씩 숨을 쉬기 위해 수면 위로 올라간다. 가까이 다가가도 다이버를 공격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만약 숨 쉬는 것을 방해하거나 해코지를 한다면 공격해 올 수도 있다. 혹시나 바다 뱀이 다가온다면 천천히 비켜나거나 스스로 지나가도록 움직이지 말고 기다리자. 또 모르니 손으로 신체의 뾰족한 부분을 덮어주면 안심이 될 것이다. 가령 후드를 쓰지 않고 있다면 양 손바닥으로 양쪽의 귀를 덮는 것이다. 입은 호흡기를 물고 있고 코는 마스크 안에 있으므로 그 밖에 돌출부위는 없으니 안심하자.
트리거 피시 이야기
오래전 함께 일하던 동료가 다이빙 중에 트리거 피시에게 귀를 물려 병원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 쥐치과에 속하는 트리거 피시는 산란기가 되면 자신의 영역을 보호하려는 성향이 강해진다. 그중에서도 열대 바다 종인 타이탄 트리거 피시(Titan trigger fish)와 옐로 마진 트리거 피시(Yellow margin trigger fish)의 암컷이 유독 그렇다. 이 두 녀석들은 성채가 거의 6 ~70센티에 가까울 정도의 대형종이며 비늘은 갑옷을 두른 듯 단단하다. 희번덕 거리는 두 눈과 두툼한 입술, 위아래로 갈퀴처럼 튀어나온 앞 이빨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항상 공격성을 띠는 것은 아니나 산란기가 되면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는 목적으로 다가오는 생명체를 쫓는다. 그들의 영역은 고깔 모양을 뒤집어 놓은 것처럼 위로 갈수록 넓어진다. 만약 본의 아니게 이 녀석들의 공격을 받는다면 그들의 영역을 벗어나기 위해 위쪽이 아닌 뒤로 물러나야 한다. 등지느러미를 꼿꼿이 세우고 두 눈을 희번덕거리며 씩씩대고 있는 트리거 피시를 본다면 공격해 올 확률이 높다. 그들 동네에서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인 만큼 괜한 시비를 걸어 봉변 당하지 말고 조금만 돌아가자.
이상 몇 녀석들만 간단히 살펴봤는데도 글이 길어졌다. 이들 외에도 조심해야 할 생물들은 많고도 많다. 성게에 찔리거나, 따개비에 베이거나, 해파리에 쏘이거나, 곰치에 물리거나, 산호에 긁히거나... 언뜻 우리네 입장에서 보면 그들이 우리를 공격하는 것이라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다이빙하며 입는 해는 대개 우리의 실수이거나 그들의 방어적인 행동에서 기인한다. 엄밀히 따지자면 우리는 그들의 세계에 무단으로 침입한 불청객일 뿐이다. 해를 입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다이빙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다이빙을 해야 한다면, 우리와 그들을 함께 그리고 최대한 보호하는 방법은 이것뿐이다. 물 외엔 아무것도 닿지 말고, 사진 외엔 아무것도 가져오지 말며, 그들 외엔 아무것도 두고 오지 마라.
John. Young Joon Kim
PADI Course Director #471381
Zero Gravity - Scuba Diving Academy & 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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