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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믿지 마라

작성자 사진: 김영준김영준



리브어보드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했다. 어느 다이버가 다이브 컴퓨터를 낚싯줄에 묶어 바다에 담가 감압을 풀었다는 이야기. 또, 다이빙 후 잠겨버린 컴퓨터 대신 다른 컴퓨터를 차고 다이빙을 계속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쓴웃음이 나면서도 과연 그게 사실일까 하는 의심이 든다. 컴퓨터를 그저 마스크나 오리발과 같은 장비로 치부한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도대체 어느 누가 자동차 브레이크를 일부러 느슨하게 하고 다닌단 말인가. 컴퓨터의 원리를 능가하는 이론 지식과 다이빙 계획, 그리고 실력이 있다면 모를까, 생명을 담보로 하는 안전장치를 조작하는 것은 과연 어디까지 허용될까? 그리고 컴퓨터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스쿠버다이빙 활동은 기본적으로 레크리에이션과 테크니컬로, 무감압과 감압의 형태로 나뉜다. 이를 딱 잘라 구분 짓기에는 다소 어려운 점이 있으나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히 말하자면, 테크니컬 다이빙은 감압을 위해 수중에서 필수로 멈춰야 하는 다이빙이나, 동굴과 같이 수직 상승이 불가능한 환경에서의 다이빙 방식을 들 수 있다. 레크리에이션 다이빙은 이러한 테크니컬 다이빙의 범위에 미치지 않는 형태의 다이빙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레크리에이션 다이빙을 '무감압 다이빙'이라 치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 레크리에이션의 범주 이내에서 다이빙한다 하더라도 감압 절차를 행하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무정지 한계 시간을 준수하고 상승 속도를 조절하며 안전 정지라는 명목으로 잠시 멈추는 행위들 모두 감압 절차의 일종으로 봐야 한다. 근래 들어 유수한 교육 단체들은 이를 받아들여 '무감압 다이빙'이라는 용어 대신 '무정지 다이빙'으로 고쳐 부르고 있다. 레크리에이션과 테크니컬을 포함하는 모든 다이빙 형태는 기본적으로 감압 다이빙이며 단지 '필수 정지 유무'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물론 레크리에이션에서의 감압은 테크니컬에서 요하는 필수적이고도 치밀한 감압 절차의 실폐 위협보다는 크지 않다. 그럼에도 여전히 위험성은 존재한다. 가랑비에 옷 젖듯 여러 날 동안 여러 번의 깊은 수심 다이빙을 이어서 하게 되면 동일한 위험에 노출된다고 봐야 한다.



감압, 즉 인체 내 질소의 흡수와 배출은 혈액순환기계와 관련이 깊다. 이는 기본적으로 압력과 시간에 비례하며 다이브 컴퓨터는 이를 기반으로 하는 감압 알고리즘을 실행한다. ​시중에는 수많은 모델의 컴퓨터가 출시되고 있고 감압을 하는 방식이나 장착된 알고리즘도 여러 종류다. 만약 어느 하나의 방식이 여타의 것들보다 효과적이라고 판명이 났다면 그 기종만 판매돼야 마땅하다.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아직 알 수 없다'라는 방증이다. 다이브 컴퓨터가 스쿠버다이버들에게 일반적인 장비로 취급되면서 더 많은 감압병을 야기하고 있다는 통계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다이빙을 더 안전하게 하기 위해 사용되는 장비가 오히려 그 반대의 작용을 유발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인 것이다.





인체가 수중에서 압력을 받으며 호흡을 한다는 것은 그저 물에 젖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신진대사에 사용되지 않는 비활성 기체 중 하나인 질소는 호흡을 통해 인체에 흡수된다. 이때 다이버의 급상승과 같이 압력을 급히 낮추게 되거나, 인체에서 수용 가능한 양 이상의 질소를 축적한 채 압력을 낮춰주면 체외로 배출되지 못 한 질소 기포에 의해 인체에 이상을 야기할 수 있다. 이를 감압병(DCS - Decompression Sickness)이라 한다. 여기서 수용 가능한 양 이상의 질소는 수심과 시간 그리고 개개인의 신체 상태에 따라 결정된다.



스쿠버다이버가 잠수 계획표나 다이브 컴퓨터를 사용하는 주된 목적은 바로 이 질소 기체로부터 인체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잠수 계획표는 다이버가 수용 가능한 질소 량 이내에 머물도록 수심과 시간을 제어한다. 나아가 다이브 컴퓨터는 잠수 계획표보다 수심과 시간을 세밀하게 계산해 줌으로써 더 오래 그리고 더 많이 다이빙할 수 있도록 허용해 준다.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인체의 작용은 산술적으로 명확하게 계산할 수 없다. 컴퓨터의 감압 알고리즘으로 산출할 수 없는 무수히 많은 변수들이 있는 것이다. 컴퓨터는 우리 몸의 신진대사와 혈액순환기계가 원활한지, 다이빙 전에 물을 얼마나 마셨는지, 힘을 얼마나 썼는지, 체온을 잘 유지하고 있는지, 숨을 얼마나 쉬었는지, 나이가 몇인지, 컨디션이 어떤지, 아픈지, 비만인지 등을 계산하지 못한다. 열거한 내용들 모두 감압병 발병을 촉진하는 인자로 밝혀져 있다. 이와 같은 요인들은 컴퓨터에서 획일적으로 정해 놓은 값보다 불리한 상황을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무정지 한계 시간을 1분 남긴 것은 괜찮고 1분 넘긴 것은 안 괜찮은 것은 지극히 극단적인 적용이지 않은가. 이러한 점들을 참작하여 요즘 출시되는 컴퓨터는 감압의 보수성을 다이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기능도 있긴 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다이버의 짐작과 선택에 따른 애매한 적용일 뿐이다. 같은 컴퓨터로 같은 수심에서 같은 시간 동안 다이빙한다 하더라도 질소의 흡수와 배출 값은 다르며, 인체에 미치는 영향 또한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고 봐야 한다.





다이빙을 맨 처음 시작했을 때 오픈워터 매뉴얼 첫 장에 나오는 도표 하나를 떠올려 보자. 수면과 10미터, 20미터, 30미터의 물속에 크기가 줄어드는 풍선이 있고, 그에 따른 압력과 부피, 밀도의 변화를 설명하고 있다. 그 도표는 스쿠버다이빙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그림이다. 단언컨대 다이빙에 관한 거의 대부분을 설명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감압 절차 또한 여지없이 그 도표에 기반한다. 감압의 요점은 비활성 기체의 포화 및 탈 포화, 즉 인체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조직에 질소가 '흡수되고 배출되는 양과 속도', 그리고 '버블의 지름'에 달렸다. 수심에 따른 풍선 그림을 이해했다면 깊은 수심에서보다 얕은 수심으로 올라올수록 컴퓨터의 상승 속도가 왜 더 느리게 설정되어 있는지, 또한 얕은 수심일수록 멈추는 구간이 더 많고 시간도 왜 더 길게 설정되어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감압병의 증상은 크게 경미한 증상(Type 1)과 심각한 증상(Type 2)으로 나뉜다. 심각한 증상은 말 그대로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위험한 상태로 갈 수 있지만, 경미한 증상은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서 호전된다. 그러나 경미하다 할지라도 증상이 지속되거나 악화된다면 타입 2로 간주하여 치료 시설을 갖춘 병원을 찾아야 할 것이다. 감압병의 경미한 일반적인 증상은 대부분 심한 피로감이나 사지 관절 부위의 통증을 수반한다. 기억을 떠올려 보라. 여러 날 동안 하루에 여러 번의 다이빙을 지속한 후 저녁에 맥주 한잔할 기력이 없을 정도로 피로감을 느낀 적이 있는가? 팔꿈치나 무릎 관절이 욱신거리는 등의 불편한 증상이 한동안 지속된 적이 있는가? 팔꿈치나 무릎에 작고 오돌토돌한 종기가 돋아나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만약 그런 상황이라면 상태를 예의주시하며 다이빙을 그만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그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황금 같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떠나온 휴가를 그저 날려버리고 싶지 않은 마음을 이해한다. 또한 함께 하고 있는 동료들에게 다이빙을 그만하겠다고 말하기란 쉽지 않음도 이해한다. 직업적으로 주어진 스케줄에 따라 다이빙을 계속해야 하는 리더라면 더욱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다이빙을 그만하거나 조금만 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면 다이빙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무정지 다이빙, 즉 멈추지 않아도 되는 다이빙을 하는 게 아닌 멈추는 다이빙을 하는 것이다.



짧은 지면으로 세세한 내용까지 전달할 수는 없으므로 골자 몇 가지를 들어본다.


- 컴퓨터에서 제공하는 무정지 한계 시간을 가능한 한 길게 남겨두라.

- 상승 속도를 권장 속도보다 천천히 하라.

- 얕은 수심으로 올라오면서 단계적으로 멈추라.

- 안전 정지는 필수로 하고 컴퓨터가 제시하는 시간보다 더 길게 하라.

- 다이빙 전후에는 물을 많이 마시고 기력을 과하게 쓰지 마라.

- 다이빙 간의 휴식을 가능한 한 길게 가져라.

- 다이빙하는 중에는 핀킥 등의 운동 량을 최소화하여 에너지를 아껴라.

- 차분하고 여유롭고 느긋하게 호흡하라.


여기서도 다이빙은 멈춤의 미학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모든 글에서 항상 강조하지만 글로써 배울 일이 아니다. 믿음 가는 강사를 찾아 배움을 청하라.





PADI의 잠수 계획표(RDP)를 보면 감압에 대한 중요한 내용을 기술해 놓은 정보가 있다. 방대한 내용을 짧은 문장으로 함축해 놓았으므로 경험 많은 강사를 통해 글귀 하나하나의 의미를 제대로 짚어보고 숙지할 것을 권한다. PADI는 지난 반세기가 넘도록 전 세계의 스쿠버다이빙 시장을 석권하며 3,500만 명에 달하는 다이버들을 가르쳐오고 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연구를 했겠으며 또 얼마나 많은 다이버들이 이를 입증한 것인가. '전 세계가 다이빙을 배우는 지름길'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는 교육 단체가, 설마 사람들로 하여금 다이빙을 덜 하도록 종용하는 방침을 설파하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과학은 진보하고 있고 맹신은 금물이지만 현재까지 존재하는 이정표들 중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것임에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



주의 : 여러 날에 걸쳐 여러 번 잠수할 경우 발생하는 생리학적 영향에 대해서는 현재 알려진 것이 '거의 없으므로', 여러 날 잠수의 끝 무렵에 가서는 잠수 횟수를 줄이고 잠수 시간도 제한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삼십여 년 전에 프린트된 RDP에 씌어있는 문장이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표에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으므로'라는 문구가 '적기 때문에'로 바뀌었다. 이 '적기 때문에'라는 구절이 앞으로 또 어떻게 변모해 나갈지는 알 수 없다. 그전까지는 컴퓨터 너무 믿지 마라. 가장 안전한 것은 다이빙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다음으로 안전한 것은 브레이크가 잘 작동하는지를 점검하고 보수적으로 행하는 것이다. 비가 오는 날도 있지 않은가.

















John. Young Joon Kim

PADI Course Director #471381

Zero Gravity - Scuba Diving Academy & 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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