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로 뒤덮여 있는 집 앞 개울가. 할아버지가 손녀로 보이는 어린아이를 데리고 낚시를 하고 있다. 이따금 낚여 올라오는 건 플라스틱뿐이다. 배가 고픈 소녀의 슬픈 표정. 결국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다음날 낚싯대를 다시 드리운다. 드디어 물고기 한 마리를 낚았다. 요리를 준비하는 할아버지와 기대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 소녀. 도마 위에서 물고기의 배를 가른다. 배 안은 온갖 플라스틱으로 가득 차 있다. 으레 그런 양 무심하게 들춰내고 조리를 시작한다. 공장 컨베이어 벨트에서 하염없이 쏟아지는 플라스틱 쓰레기 장면으로 영상은 끝을 맺는다. 그린피스가 만든 2050년의 우리 모습이다.
플라스틱은 석유에서 추출된 원료를 결합하여 만든 고분자 화합물이다. 여타 소재에 비해 가공이 쉽고 가벼우며 단단하다. 생산 비용 또한 저렴해 인류가 20세기에 만들어낸 가장 훌륭한 발명품으로 꼽힌다. 전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은 연간 4억만 톤을 넘어섰다. 생산량 증가 폭은 지난 50년 사이에 100배 이상 늘었다. 플라스틱이란 물질이 탄생한지 백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에 이 소재가 포함되지 않은 것을 찾기 어렵다. 이젠 플라스틱이 없으면 생활은 불가능한 지경이다.
플라스틱은 자연 분해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비닐봉지는 약 20년, 스티로폼은 50년, 페트병은 500년, 단단한 PVC 재질은 무려 1000년이나 걸린다. 재가공 가능한 제품은 의당 재활용돼야 하지만 생산된 플라스틱 중 절반 이상은 일회용으로 쓰이고 버려진다. 버려지는 것 중에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양은 연간 1300만 톤에 달한다. 세계 경제 포럼에 의하면 바다에 쓰레기로 존재하는 플라스틱 중량이, 2014년에 전체 물고기의 20% 정도였던 것이 2050년이 지나면 물고기보다 더 많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지구의 대양에는 쓰레기가 광범위하게 모여 있는 곳이 있다. 바다로 흘러든 쓰레기는 대양을 순환하는 해류를 따라 이동하여 거대한 쓰레기 섬을 형성한다. 이 중 규모가 가장 큰 것은 북태평양에 있는 ‘거대 태평양 쓰레기 지대’(Great Pacific Garbage Patch)다. 대한민국 국토 면적의 16배 크기에 달한다. 과학자들은 8만 톤가량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이곳에 몰려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국제 해양 환경단체 '오션 컨서번시'(Ocean Conservancy)는 현재 전 세계 바다에 1억 5천만 톤 이상의 플라스틱이 떠다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플라스틱은 바다에 떠다니면서 자외선과 파도, 염분 등으로 인해 작은 조각으로 갈라진다. 작고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조각은 물고기나 새의 먹이로 쉽게 오인된다. 쓰레기 섬 주변 지역에서 잡힌 어류를 조사한 결과 대부분의 물고기 뱃속에서 플라스틱이 확인됐다. 우리나라의 해양생물자원관과 국립생태원은 2019년 한 해 동안 45마리의 바다거북 폐사체를 부검했다. 이중 31마리의 몸속에서 플라스틱 쓰레기가 발견됐고, 15마리는 플라스틱 쓰레기 섭취로 인해 죽은 것으로 밝혀졌다. 플라스틱을 먹고 죽는 것뿐만 아니라 플라스틱 재질의 폐그물 등에 엉켜 고통받는 동물들의 영상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플라스틱 조각은 점점 더 분해되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초미세 플라스틱으로 변신한다.
오늘날 인간을 포함한 거의 모든 생명체의 몸속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020년에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국내에서 유통되고 있는 수산물 27개 품목, 81개 시료를 분석한 결과 98.7%의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됐다. 이처럼 거의 대부분의 수산물에는 미세 플라스틱이 축적되어 있으며 우리네 식탁으로 올라와 몸속으로 옮겨진다. 미세 플라스틱은 수산물 뿐만 아니라 식수나 음료수, 소금 등을 섭취할 때도 인체에 유입된다. 한 사람이 1년 동안 먹게 되는 미세 플라스틱의 양은 평균 250그램 정도로 이는 신용카드 50장 분량이다. 플라스틱이 인체에 미치는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이긴 하지만 그 유해성이 점차 밝혀지고 있다. 각종 환경호르몬과 같은 화학적 독성이 인체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데 대해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동의한다.
우리나라의 1인당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량은 해마다 세계 최고 수준을 웃돌고 있다. 마트에서 장을 보거나 배달 음식을 시켰을 때 나오는 플라스틱 양을 생각해 보자면 절로 수긍이 가는 수치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쓰레기를 분리배출하면 재활용이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재활용을 위한 원료 폐플라스틱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한다. 사용량은 많음에도 재활용은 제대로 되고 있지 않는 것이다. 2018년 중국의 재활용 쓰레기 수입 중단으로 겪었던 쓰레기 대란은 국제 유가의 변동과 관계가 깊다. 재활용하는데 드는 비용보다 새로 만드는 비용이 더 싸졌기 때문이다. 재활용되어야 할 쓰레기마저도 자본시장의 논리에 따라 줄기는커녕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재활용품 분리 작업 현장에서 인터뷰한 내용은 플라스틱이 일반 쓰레기로 둔갑하는 실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흰색 비닐을 제외한 색깔이 들어간 비닐은 일반 쓰레기로 분류된다. 일회용 컵이나 출처와 재질이 불분명한 플라스틱도 일반 쓰레기로 분류된다. 원가를 낮추기 위해 얇게 만들어진 플라스틱도 재활용 표기가 있다 해도 일반 쓰레기로 분류된다. 겉은 플라스틱이나 다른 재질이 조금이라도 섞인 품목도 모두 일반 쓰레기로 분류된다. 색깔 있는 페트병은 재활용이 가능하긴 하나 공정이 까다롭고 비용도 많이 들어 일반 쓰레기로 분류된다. 이처럼, 재활용 선별장에 도착한 플라스틱 중 절반 이상은 일반 쓰레기로 분류되어 버려지고 있다.
최근 국내 모 대학이 조사한 '물질재활용 수치' 보고에 의하면, 우리가 플라스틱 10개를 버리면 2개 정도만 재활용되고 6개는 소각, 2개는 매립된다고 한다. 그러나 환경부는 우리나라의 버려진 플라스틱의 약 60%가 재활용된다고 홍보하고 있다. 비닐류 같은 경우는 70% 정도가 고형연료로 만들어 태우는 방식(SRF)으로 사용되는데, 환경부는 이 부분까지도 재활용으로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플라스틱을 소각하면 열에너지를 얻을 수는 있지만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에너지원이 필요하고 대기를 오염시키는 화학물질도 배출된다. 결국 또 다른 환경문제를 야기한다.
오늘날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플라스틱 폐해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각성하기 시작했다. 관련 법안을 만들어 일회용품 플라스틱 사용을 금지하고 나선 것이다. 우리나라는 2022년까지 일회용 컵 및 비닐봉지 사용량을 35% 줄이고, 2030년까지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가장 좋은 것은 애초에 안 만들고 안 쓰는 것이겠지만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방법은 우리 모두가 문제를 인식하고 동참하는 수밖에 없다. 정부는 합당한 규정과 재원을 마련하고, 기업은 재활용이 가능한 제품을 만들고 과대 포장을 삼가며, 우리는 사용을 최소화하고 분리배출과 재활용을 당연시해야 한다. 신의 선물이라 불렸던 플라스틱은 부메랑이 되어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John. Young Joon Kim
PADI Course Director #471381
Zero Gravity - Scuba Diving Academy & Club
추천 다큐멘터리 '플라스틱 오션' https://youtu.be/o0a9gBC5-A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