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작성자 사진김영준

수중 촬영에 대하여




다이빙에 재미가 없어졌다는 한 후배 강사의 토로를 듣고 의아해했던 적이 있다. 그는 다이빙을 접하고서 한동안 무척 열심이었다. 여러 형태의 교육을 받았고 멋진 장비들도 많았으며 세계 각지의 포인트를 두루 섭렵했다. 아름답게만 보였던 산호 군락과 알록달록 열대어들도 이젠 지겨워졌다는 것이다. 매번 주마간산 격으로 지나다니기만 했다면 흥미를 잃을 만도 하다 싶었다. 나는 그에게 다이빙을 하는 방식을 바꿔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오리발질을 멈추고 주위에 있는 암초나 산호 속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리고 작은 똑딱이 카메라도 하나 추천해 주었다.


여느 여행지에 가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곤 한다. 그날의 기록을 남기고픈 마음은 물속 여행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수중 촬영은 스쿠버다이빙을 즐길 때 가장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놀이 방식 중 하나다. 풍경을 찍든 생물을 찍든 다이버를 찍든, 찍는 행위도 즐겁고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재미다. 물속 시야가 좋다면 멋진 경관을 찍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면 주위의 작은 생명체를 찾아보는 것도 방법이다. 이렇듯 사진 찍기에 재미를 붙인다면 장소가 어떻든 환경이 어떻든 다이빙에 대한 흥미를 이어갈 수 있다.


​해외에서 다이빙 일을 시작할 무렵, 일본인 다이버들을 보고 신기해했던 적이 있다. 그들은 자기 장비는 없을지언정 작은 카메라 하나씩은 거의 모두 들고 있었다. 물속에서 그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는 곳에 가면 어김없이 진귀한 생명체를 보곤 했다. 다이빙 후엔 찍은 사진을 보며 여러 종류의 어류 도감을 펼쳐놓고 로그북을 쓰던 모습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아까 그거 뭐였어요?"

다이빙을 마치고 올라와 가장 먼저 받는 질문이 아닐까 싶다. 기억을 더듬어보지만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어류 도감을 살펴봐도 아까 본 그 녀석이 이 녀석인지 저 녀석인지 물어보는 당사자도 긴가민가 한다. 때로는 물속에서 열심히 보여줬던 것을 다이빙 후에 이야기하다 보면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 촬영한 사진이나 영상은 매우 유용하다.


수중 촬영이 처음이라면 부담 없는 작은 기기부터 시작해 보라고 제안하고 싶다. 요즘 나오는 소위 똑딱이 카메라들도 성능은 매우 뛰어나다. ​​과도한 장비는 때론 다이빙의 즐거움과 안전마저 위태롭게 할 때가 있다. 다이빙에 방해가 되지 않으면서 스스로 감당이 가능한지부터 살펴야 한다.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 다이빙 실력도 늘어난다. 원하는 구도의 사진을 찍으려면 원하는 위치에서 멈춰야 한다. 오리발과 호흡, 손과 눈을 원하는 곳에 위치하고 각자의 임무를 실행시키기 위한 훌륭한 연습이 된다.



수중에서의 촬영은 육상에서와는 달리 몇 가지 큰 차이점이 있다. 크게 두 가지를 꼽자면 ​전자 기기들이 물과 완벽히 분리되어 이상 없이 작동해야 한다는 점과, ​수심과 환경에 따라 빛의 양이 수시로 변한다는 점이다. 사진은 빛으로 그린 그림이라고 하듯 수중 세상에서 빛이 작동하는 물리적인 변화를 잘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따른 기기의 조작 방법과 적절한 운용 기술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


종종 고가의 거대한 촬영 장비를 들고 다니는 다이버들을 본다. 멋진 작품이 나오겠거니 생각하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도 많다. 장비가 좋다고 해서 결과물도 꼭 훌륭한 것은 아닌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을 주는 오래전에 찍힌 사진들은, 지금은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기기로부터 나온 것임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기왕이면 성능 좋은 고가의 장비를 사용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장비의 성능을 추종하기에 앞서 사물을 바라보는 혜안부터 키우는 것이 우선이지 않을까 싶다. 만약 나의 의도를 기기의 성능이 도저히 따라오지 못한다고 느낄 때, 그때 바꿔도 늦지 않다. 무엇으로 어떤 것을 찍느냐 보다 누가 어떻게 찍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나는 여긴다.


SNS 등에서 멋진 사진을 볼 때면 과연 그것이 사진인지 그림인지 분간이 안 갈 때가 있다. 그만큼 기계의 성능도 좋아지고 보정 기술도 발전한 것이리라. 그림 같은 사진이 있고 사진 같은 그림이 있다. 그림 같은 사진은 탄성을 자아내게도 하고 사진 같은 그림은 고개를 갸우뚱하게도 한다. 포토샵 영상을 보고 있자면 편집을 넘어 거의 창작의 수준에 가까울 때가 있다. 정녕 카메라로 '찍은' 사진인지 컴퓨터로 '그린' 사진인지 테세우스의 배처럼 그 실체가 모호하다. 결과물을 보완하고 보다 근사하게 표현하기 위해 보정 작업은 어느 정도 필요하다. 애초에 '사진 같은 그림'이 목적이었다면 그럴 수 있지만 '그림 같은 사진'을 원한다면 보정의 수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 자로 잰 듯 딱 들어맞는 것는 때론 삭막함을 주지만 무언가 모자란 듯한 것은 평온함을 넘어 오묘함을 품기도 한다.


'처음 찍은 만 장의 사진은 쓰레기였다'라고 한 어느 유명한 작가의 말을 떠올려 본다. 그는 카메라에 필름이라는 것을 넣어 사용했지만 이젠 손톱만 한 플라스틱 조각 안에 오만 장의 사진을 담을 수 있다. 겨우 '만 장'이라고 했으니 유명한 작가가 되는 길은 생각보다 빨리 올지도 모를 일이다. 유명한 작품들은 대개 우연히 찍힌 것들이 많다. 그 우연을 담기 위해 그들은 항상 준비되어 있지 않았을까. 무엇보다도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카메라를 항상 지니고 다녀야 한다. 마치 마스크나 오리발과 같이 카메라 또한 다이빙의 기본 장비로 치부하는 것이다. 또한 내가 원하는 데로 기기가 바로 실행될 수 있도록 그 조작에 익숙해져 있어야 한다.


처음부터 작품 사진을 찍겠다는 생각보다는 다이빙의 기록을 남기거나 보았던 수중생물들을 식별할 목적으로 접근해 보는 것이 좋겠다. 그렇게 수중생물을 더 많이 알게 되고 그만큼 수중 세상을 보는 시야도 넓어진다. ​깊이 들어가고 멀리 다닌다고 해서 더 많이 보고 더 멋진 사진을 찍는 것은 아니다. 우선은 멈춰서 다리 아래를 살펴보라. 바로 거기에 작은 장난감을 들이대면 새로운 세상이 보일 것이다.













- PADI Course Director

- PADI Specialty Instructor Trainer

- EFR Instructor Trainer

- 1500+ PADI Certifications Issued since 2002

- 4900+ Dive Log since 2001


- 2018 서울 제로그래비티

- 2013 서울 엔비다이버스

- 2013 코타키나발루 CDTC 졸업

- 2010 태국 꼬따오 아시아다이버스

- 2008 태국 꼬따오 플래닛스쿠바

- 2004 태국 꼬따오 코랄그랜드

- 2003 호주 케언즈 3D어드벤쳐스

- 2002 태국 푸켓 다이브아시아

- 2002 PADI 인스트럭터 #471381

- 2001 PADI 다이브마스터

- 2001 PADI 다이버




조회수 86회댓글 0개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Comment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