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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리 퇴치에 대하여




화창한 오후의 어느 바닷가. 배에서 내린 다이버들의 손에는 한가득 담긴 망태기가 들려 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너른 마당에 별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울긋불긋한 빛깔로 금세 빽빽이 덮인다. 거의 다 별불가사리다. 작업에 나선 다이버들과 어촌계 관계자들 모두 기분이 좋아 보인다. 나름 멋지게 만든 현수막을 펼쳐 들고 인증 사진 찍느라 분주하다. 불가사리 썩는 냄새가 스멀스멀 코를 자극하기 시작한다.



불가사리는 지구상에 1800여 종, 우리 바다에는 100여 종이 서식한다고 한다. 극피동물로 먹성이 좋고 번식력이 뛰어나며 몸체가 절단돼도 재생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추위에 강해 찬물에서도 잘 살고 오염 저항력도 뛰어나 심하게 오염된 물에서도 살아남는다. 우리 바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종 중에 아무르불가사리와 별불가사리가 있다. 이 두 녀석은 어패류까지 잡아먹는 포식 동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양식 패류 관련 어업에 피해를 끼치는 '나쁜 녀석들'로 낙인찍혀 있다. 반면 해양에 가라앉은 유기물을 섭식하여 바다를 청소하는 순기능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별불가사리

아무르불가사리는 러시아 오호츠크해를 기원으로 우리나라와 일본 등의 북태평양에 주로 서식한다. 지금은 국가 간 선박의 이동으로 인해 전 세계에 광범위하게 퍼져나간 실정이다. 이 녀석은 육식성으로 빠른 움직임과 긴 다리를 이용해 전복이나 소라, 가리비 등을 잡아먹는다. 여느 종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죄로 패류 양식장과 같은 수산업계에 가장 큰 피해를 주는 주범이 되었다. 천적으로는 나팔고둥이 대표적이나 무분별한 남획으로 멸종 위기에 놓여있다.



별불가사리는 우리 바다 토속 종으로 한국, 일본, 러시아 연해주 등지에 분포한다. 우리 바다 전 연안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종이다. 주로 해저에 가라앉은 동물의 사체나 각종 유기물을 먹이로 하지만 고둥이나 조개, 갯지렁이 등의 저서생물도 먹을 수 있다. 이 녀석 또한 육식성이긴 하나 아무르불가사리에 비해 다리가 짧고 움직임도 느려 조개와 같은 패류를 쉽게 잡아먹지는 못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가사리 구제 작업 때 잡혀오는 거의 대부분은 주범인 아무르불가사리가 아니라 이 녀석이다.


아무르불가사리

해양생태계의 보전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유해 해양생물의 정의를 이와 같이 하고 있다. ‘사람의 생명이나 재산에 피해를 주는 해양생물로서 해양 수산부령이 정하는 종’. 현재 우리나라의 유해 해양생물로 지정되어 있는 종은 총 17종이다. 이 중 극피동물로는 아무르불가사리와 별불가사리가 이름을 올려두고 있다. 포식 량의 차이가 있긴 하나 두 종 모두 패류를 잡아먹을 수 있고, 어민들에게 경제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다고 판단하여 유해 종으로 지정하였다는 설명이다. 덧붙여 불가사리 퇴치 작업은 지역 자치단체와의 협의하에 진행해야 하며, 종이 없어질 정도의 남획은 자제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전복이나 소라 등의 패류는 미역과 다시마와 같은 갈조류를 주된 먹이로 한다. 때문에 갈조류를 양식하는 어민들은 패류를 몹시 경계한다. 반면에 패류를 양식하는 어민들은 이를 먹이로 하는 불가사리를 극도로 경계할 수밖에 없다. 해조류를 먹고사는 성게는 바다를 사막처럼 황폐하게 만드는 이른바 '갯녹음 현상'의 주범으로 지목되었다. 이런 이유로 일각에서는 성게를 죽여 개체 수를 조절하는 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이렇듯 서로의 입장에 따라 패류를 없애고, 불가사리를 없애고, 성게를 없애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방식이라면 도대체 무엇을 더 없애고 어디까지 손을 대야 하는 걸까.



주름불가사리

전문가들은 특정 종이 늘어나는 가장 큰 원인을 해양의 오염으로 꼽고 있다. 생명력이 강한 불가사리가 증가한 것도 이런 요인으로 분석한다. 오늘날 온난화로 인한 수온의 상승과 수질의 오염은, 해양생태계의 1차 생산자인 해조류의 생장을 현저히 줄어들게 만들었다. 연쇄 작용으로 먹이가 모자라게 된 패류 또한 그 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제주에서 흔히 보던 오분자기가 지금은 양식 전복으로 대체된 지 오래된 것만 봐도 그 상황의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다. 이렇듯 우리의 잘못은 뒤로 한 채 그 책임을 다른 녀석들에게 전가하고 있는 셈이다. 생존력이 강한 탓에 살아남은 불가사리는 모든 혐의를 뒤집어쓰고 그렇게 뙤약볕에서 죽어 나가고 있다.


오래전 침입 외래종으로 지정된 황소개구리가 사회적으로 큰 쟁점이 된 적이 있었다. 최근의 연구 보고에 따르면 황소개구리의 개체 수는 줄었고 몸집도 예전과 달리 작아졌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생태계에 온전히 편입되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으나 교란의 위험이 줄어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에는 인위적인 간섭도 있었지만 자연 스스로 작용했으리라고 보는 견해가 크다. 이렇듯 시간이 지나면서 조정은 자연히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문제는 자연이 하는 시간이 우리가 원하는 시간과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


아펠불가사리

인간이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자연적인 상태에서도 외래종의 유입은 존재한다. 점차 아열대로 변해가는 우리 바다에서도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종들을 심심찮게 본다. 대부분의 종은 별 탈 없이 새로운 생태계와 조화를 이뤄 살아가는 듯 보인다. 개중에는 노무라입깃해파리나 아무르불가사리와 같이 특정 업계에 직접적인 피해를 끼치는 녀석들도 있긴 하다. 이때 자연의 시간을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는 현실에서 적절한 조치는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관계없는 지역에서의 무분별한 간섭은 자연의 섭리에 불응하는 또 하나의 생태계 교란이 아닐까.



지구의 생태계 안에 속해 있는 인류는 천적이 없다. 그럼에도 종의 증감이나 자웅의 비율은 적절하게 조절되고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언뜻 우리 스스로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부분들은 많다. 그것을 무엇이라고 부르던 이 보이지 않는 손은 그의 할 일을 잘 하고 있는 것이다. 오래전, 다 죽어버린 산호 밭이 이듬해 그 위에서 다시 피어나는 새 생명을 보았다. 자연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위대하다고 믿는다.














John. Young Joon Kim

PADI Course Director #471381

Zero Gravity - Scuba Diving Academy & 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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