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과 열정 사이
- 김영준

- 8월 28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2일 전

우리는 입수 후 하강을 준비하고 있다. 먼저 입수한 팀의 일원으로 보이는 한 다이버가 보트 옆에 줄을 잡고 떠있다. 무언가 문제가 있는지 보트로 다시 오르려는 듯하다. 그 다이버의 팀원들은 그를 두고 모두 물속으로 내려가 버린 모양이다. 보트로 오르는 리프트는 반대편에 있어서 수면 수영으로 이동해 가야 한다. 보트 위의 스태프가 그녀를 내려다보며 반대편으로 오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는 보트 옆에 달린 로프만 꼭 부여잡고 있다. 잔뜩 겁을 먹은 듯하다. 보트 스태프는 결국 내게 그녀를 도와줄 것을 부탁한다. 나는 우리 팀원들을 잠시 대기시킨 채 그녀를 달래며 보트 반대편으로 끌고 가 보트 위로 올린다.
위급 상황에서 겁을 먹으면 나타나는 신체 변화는 다음과 같다.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면서 아드레날린을 분비한다. 이어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호흡은 가빠지며 근육에 힘이 들어간다. 빠르고 얕은 호흡은 체내에 이산화탄소를 증가시키고, 이는 호흡 충동을 더 유발한다. 숨은 더 차고 잘 쉬어지지 않는다고 느낀다. 동공은 커지지만 시야는 더 좁아지고 청각 기능에도 영향을 미친다. 판단력은 떨어지고 근육은 긴장해 몸이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패닉(panic) 상태로 들어서기 일보 직전이다.

다이빙 사고를 연구하는 여러 단체의 보고서에 따르면, 패닉 상태에 빠지는 데는 불과 10초도 걸리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공포가 극심해지면 뇌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위험한 장소에서 벗어나는 것'을 우선시한다. 수중이라면 수면으로 급히 올라가려고 하거나, 출구를 향해 무작정 달려가거나, 로프나 사다리 혹은 버디를 강하게 붙잡고 매달리는 등의 행동이 나타난다. 그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것은 호흡기를 입에서 빼 버리거나 마스크를 벗어 버리는 행동이다. 패닉에 빠진 다이버의 몸은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 움직이지만, 뇌의 판단 능력은 오히려 떨어지는 것이다.
패닉 상태에서 나타나는 행동과 반대인 경우도 있다. 보통 수동적 패닉이라고 하는 프리즈(Freeze) 상태다. 몸이 얼음처럼 굳어버리는 것이다. 갑자기 매우 강한 공포를 느끼면 뇌가 행동을 결정하지 못하고 일시적으로 정지해 버린다. 다이빙 중에 이런 상황이라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거나, 리더의 신호나 지시를 이해하지 못하고 반응 없이 멍하니 쳐다보기만 한다. 중요한 점은 겉으로는 매우 조용하고 침착해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이를 눈치채지 못한다면 어떤 상황으로 이어질지는 뻔한 일이다. 바로 이런 점들이 패닉을 사전에 예방하고 그전에 대응해야 하는 이유다.

패닉 상태에 빠지면 본능이 행동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공포가 커질수록 생각하는 뇌인 전두엽의 기능이 떨어지면서 기억력이 급격히 저하된다. 대처법을 이미 배웠고 평소에 하던 행동도 잘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공포를 느꼈을 때 몸이 자동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실행 절차를 반복해서 훈련하는 이유다. 경험 많고 숙련된 다이버는 위험을 감지하면 뇌가 ‘이미 겪어 본 상황’으로 인식한다. 본능의 편도체보다 이성의 전두엽이 앞서 작동하는 것이다. 즉, 호흡을 가다듬고, 상황을 판단하며, 문제를 순서대로 해결해 나간다. 이것이 바로 교육과 경험, 그리고 반복 훈련의 힘이다.
패닉이 발생한 뒤 구조하려고 하면 이미 늦었을 수 있다. 생존 본능이 이성을 완전히 지배해 괴력을 발휘하며 통제 불능 상태가 된다. 구조자마저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좋은 구조는 패닉 상태에 놓이기 전에 개입하는 것이다. 레스큐 다이버 코스를 제공하는 주요 교육기관의 강습 커리큘럼에도,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다이버를 조기에 식별하고 지원하는 것을 중요한 훈련 내용으로 다루고 있다.

극심한 긴장 상황은 청각 기능에도 영향을 미친다. 뇌가 생존에 필요한 다른 감각에 우선순위를 두면서 청각 정보 처리가 떨어지는 것이다. 주의력이 약해지면서 언어를 해석하고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이 따라 저하된다. 그래서 조곤조곤한 설명을 듣고도 그것을 적절한 행동으로 바로 연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태에 놓인 사람을 도울 때는 장황한 설명보다는 '짧고 명료한 지시를 단호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이빙 중 위급 상황을 인지한 리더가 때로는 평소보다 강한 목소리와 단호한 어조로 대응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다이버들은 그런 모습을 때때로 서운하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더 큰 문제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한 리더의 판단과 대처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마냥 웃으며 즐겁기만 하면 더없이 좋으련만, 원치 않은 상황은 때때로 예고 없이 온다. 자연은 위대하고, 내 마음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으며, 특히 물에서는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즉시 도움 줄 수 없다. 단 10초면 끝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너무 섭섭해하지 마라. 물에 같이 들어가는 다이버를 나 몰라라 하거나 박대하는 리더를 나는 지금껏 본 적이 없다. 앞에서 얘기한, 패닉 직전에 놓인 그 다이버의 리더는 많이 늦었지만 결국 수면으로 올라왔다. 그들이 그날의 상황을 하나의 씁쓸한 해프닝이 아닌 값진 교훈으로 삼았길 바란다.

John. Young Joon Kim
PADI Course Director #471381
Zero Gravity - Scuba Diving Academy & 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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